'매그레 시리즈'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24.06.14 매그레 시리즈 20 [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조르주 심농 - 은퇴했다며? 다시 반장님?
  2. 2024.06.13 매그레 시리즈 21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조르주 심농 - 구두 하나로 고골을 제친다
  3. 2021.11.18 매그레 시리즈 9 [타인의 목] 조르주 심농 - 진범 잡으려 사형수 탈옥 시켜
  4. 2017.03.20 매그레 시리즈 19 [매그레] 조르주 심농 - 형사가 아닐 때 수사는 어떻게?
  5. 2017.03.20 매그레 시리즈 18 [제1호 수문] 조르주 심농 - 뒤엉켜 버린 욕망의 사슬
  6. 2017.03.20 매그레 시리즈 17 [리버티 바] 조르주 심농 - 멜로드라마, 어떤 사랑 이야기
  7. 2017.03.19 매그레 시리즈 16 [안개의 항구] 조르주 심농 - 죽이려다 치료하고 다시 죽인다
  8. 2017.03.19 매그레 시리즈 15 [베르주라크의 광인] 조르주 심농 - 침대 위에서의 추리
  9. 2017.03.18 매그레 시리즈 14 [플랑드르인의 집] 조르주 심농 - 실종사건, 의외의 범인
  10. 2017.03.18 매그레 시리즈 13 [생피아크르 사건] 조르주 심농 - 예고살인 + 살인범 죽음 예고
  11. 2017.03.17 매그레 시리즈 12 [창가의 그림자] 조르주 심농 - 돈 때문에 파멸되는 인간 군상들
  12. 2017.03.17 매그레 시리즈 11 [센 강의 춤집에서] 조르주 심농 - 카뮈 이방인 태양
  13. 2017.03.15 매그레 시리즈 10 [게물랭의 댄서] 조르주 심농 - 매그레 부인의 질투
  14. 2017.03.13 매그레 시리즈 8 [선원의 약속] 조르주 심농 - 팜므파탈 선상 질투극
  15. 2017.03.12 매그레 시리즈 7 [네덜란드 살인 사건] 조르주 심농 - 사회심리학
  16. 2017.03.11 매그레 시리즈 6 [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 팜므파탈 + 푸아로식 파이널
  17. 2017.03.10 매그레 시리즈 5 [누런 개] 조르주 심농 - 죽음을 부르는 개
  18. 2017.03.08 매그레 시리즈 4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조르주 심농 - 씁쓸한 인생
  19. 2017.03.06 매그레 시리즈 3 [생폴리앵에 지다] 조르주 심농 - 매그레 반장의 범죄
  20. 2017.03.05 매그레 시리즈 2 [갈레 씨, 홀로 죽다] 조르주 심농 - 추리물을 넘어 문학으로
  21. 2017.03.04 매그레 시리즈 1 [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 균열 이론, 인간미

마제스틱 호텔의 지하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 2017년

은퇴했다며? 다시 반장님?

매그레 시리즈는 총 75권인데, 세트로 묶은 19권까지 딱 좋았다. 어쨌거나 8년 후에 다시 시치미 뚝 떼고 시리즈를 이어갔다. 매그레는 경찰에서 은퇴하고서 사건 하나도 해결하는 끝을 내놓고는, 다시 돌아온 시리즈에서 다시 반장님이다.

그래도 복귀작이니 기대를 하고 읽었다. 너무하게도 별로였다. 추리소설로서 그렇다. 범죄 트릭이나 범인 잡는 긴박함 같은 것을 원했는데, 조르주 심농이 내놓은 것은 달랑 위조범이었다.

반면, 문장은 최상급으로 써 놓았다. 호텔 지하에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묘사가 압권이다. 그렇게까지 잘 쓸 필요는 없는데.

옛날 멜로드라마 같은 사연이다. 불쌍하긴 하더라.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사람 도와주는, 마음 착한 매그레 반장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요?" 영어 프랑스어 통역 때문에 이 말이 자주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웃기려고 했던 것 같다.

가난하지만 부지런히 살며 진심으로 사랑하며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은 매그레 시리즈는 내내 나온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 반장님은 서민 편이다.

 

Posted by lovegood
,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 2017년

구두 하나로 고골을 제친다

실직한 사내가 살해당한다. 가장인 그의 아내와 자식과 친척들은 그를 무시한다. 딱히 특별한 거라고는 없는 사건. 하지만 살해 당시에 그가 싣고 있었던 누런 구두는 이 사내의 일상과 너무 달랐다. 이 단서로 범인을 추적해 가는데... 

실직한 가장의 죽음. '갈레 씨, 홀로 죽다'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다. 그래도 초반이 흥미롭기 때문에 어쨌거나 끝까지 다 읽긴 했다. 끝이 워낙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범인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고 그냥저냥 잡힌다. 살짝 웃음 하나 남기고 끝났다. 불쌍한 라푸앵트.

"루이 투레가 누런 구두를 사 신었다는 것은 매그레가 보기에 하나의 단서였다. 우선, 그것은 해방감의 증거였다. 유행하는 구두를 신고 있는 동안은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인 듯이 생각되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즉, 도로 검은 구두로 갈아 신을 때까지는 아내와 처제, 동서들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78~79쪽

그 흔한 구두 하나로 소시민의 고독을 이토록 절묘하게 잡아내다니. 귀신 같은 솜씨다. 왜 작가들이, 소설가들이 조르주 심농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니콜라이 고골을 우습게 제친다.

옛날 외국 소설에서 우리나라 현재를 느끼다니. 씁쓸하다. 실직한 가장 남편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아무래도 일반적인 추리소설 독자라면 실망할 작품이다. 정교한 트릭, 환상적인 추리, 놀라운 반전으로 밝혀지는 의외의 범인.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겠지. 도서관 종이책이 거의 새 책에 가까웠다. 인기가 없다.

하지만 매그레 심농 팬이라면 다르다. 반장님이 자기 방식대로 나쁜 년놈들 혼내주는 것과 범인 잡는 와중에도 웃음을 선사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 오탈자

99쪽 밑에서 셋째 줄
내로라 할 것 없으나마 => 없으나

179쪽 위에서 첫째 줄
좋았던 옛 시절 생각이 나누먼. => 나는구먼.

전자책에도 똑같이 나온다.

 

Posted by lovegood
,

진범 잡으려 사형수 탈옥 시켜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 중에 유명하고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의 제목이 우리나라에서는 세 가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타인의 목 - 열린책들 최애리 번역본
사나이의 목 - 동서문화사 민희식 번역본
남자의 머리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결국, 이 모든 제목은 '사람의 목숨'을 뜻합니다. "뭣이 중헌디?" 영화 곡성에 나온다고 하는데, 심농의 추리소설 '남자의 머리, 타인의 목, 사나이의 목'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옵니다. "사람의 목숨이 중합니까, 스캔들이 중합니까?" - 최애리 열린책들 번역본

매그레 형사는 자기가 체포해 놓고도 이 자가 무죄임을 알아서 자기 자리를 걸고서 판사, 장관, 교소도의 허락을 받아 사형 집행이 임박한 남자를 일부러 풀어 줍니다.

젊은 판사는 마지못해 이런 매그레 형사의 계획에 찬성했지만, 유독 한 신문에서 사법당국과 합의 하에 사형 선고를 받은 자를 탈옥시켰다는 보도가 터지자 짜증을 냅니다. 게다가 매그레 형사가 수사에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자, 판사는 더더욱 짜증을 부립니다.

독자도 이 소설을 읽어 나아가면서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값비싼 고급 카페 구석에서 싼 음식만 주문하며 자리를 오래 지키던 자가, 사건과 전혀 관련성을 찾을 수 없는 인물이 대뜸 말이죠, 매그레 형사한테 사건 관련 힌트랍시고 주절거리면서도 절대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댈 수 없고 근처에도 못 가고 있다고 조롱하는 겁니다. 약이 오르죠.

실제로 도대체 뭔가 뭔지 알 수 없기는 독자도 매그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끝에서야 알 수 있게 되죠.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형식으로, 마지막에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떠오릅니다.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머리는 좋지만 가난한 청년, 세상에 대한 분노, 그리고 거의 완전범죄에 가까웠던 것까지. 그럼에도 심농은 장황하게 중얼대지 않습니다. 라데크는 사형 직전에 "망했군!" 한마디를 할 뿐이고 매그레는 난로에 석탄을 넣어 화구가 부셔져라 불을 쑤셔댈 뿐입니다. 

정의는 실현되었으나 떫은 씁쓸함이 남습니다.

타인의 목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책 제목은 그 이름도 이상한 '사나이의 목'이다. 제목이 워낙 특이해서 몇 번인가 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이상하게도 1장조차 읽어내지 못했다. 시작부터 사형수가 나와서 꺼림직해서 더 읽기 싫었다. 읽기를 단념한 후, 그 이후 사건 전개를 내 멋대로 이상하게 상상했다. 사나이의 목이 잘렸으리라, 끔찍하게!

열린책들은 제목 번역을 '타인의 목'으로 정했다. 여전히 눈길을 끈다. 제목만큼이나 시작부터 아주 별난 소설이다.

주인공 매그레가 자신이 잡은 범인을 일부러 탈옥시킨다. 매그레가 직접 잡은 범인이지만 그가 범인이 아닐 거라는 양심의 목소리에 따른 것이다. 증거는 확실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괜히 억울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 그는 자신의 목숨은 아니지만 거의 목숨 같은 자기 자리를 서슴없이 건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자를 일부러 풀어준다. 그리고 추적한다. 추적하던 부하가 탈옥수한테서 머리 부상을 크게 당하고 그만 추적을 놓치고 만다.

매그레는 다시 탈옥수를 추적해 가던 중 부자들의 호화로운 식당에서 이상한 젊은이를 만난다.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자가 자꾸만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매그레를 다그친다.

의학도 출신의 젊은이는 대놓고 매그레와 사건의 진상을 놓고 대결한다. 혼자서 열심히 사건 해결을 위한 여러 말을 쏟아대지만, 매그레는 꿈쩍도 안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 나오는 '로쟈'를 보는 듯했다. 가난해서 대학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어 가면 아주 미친다. 분명히 저 자식이 범인인데 도저히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 독자는 주인공인 매그레 입장이 되는데, 자꾸만 옆에 와서 약올리는 말만 해대니. "당신은 결코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겁니다." 아주 미친다, 미쳐. 게다가 돈자랑까지 해댄다. "반장님, 경찰 양로원에 몇천 프랑쯤 기부하려면 누구한테 말해야 합니까?"

그러다 후반부에서 전세가 역전된다. 매그레가 자신을 조롱하던 라데크를 몰아대며 질문을 퍼부으며 이것저것을 명령한다. 관련이 없어 보였던 조각들이 맞춰지며 경악스러운 진실이 밝혀진다.

책 표지의 커피잔을 보니, 라데크가 카페 한 구석에서 제일 싼 커피만 사서 홀작거리면서 부유한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값비싼 칵테일을 마시며 떠드는 모습을 응시하며 세상에 대한 증오를 키우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단지 돈이 없을 뿐인데 나는 이렇게까지 몰락해야 하는가.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저들은 저렇게 살 권리를 얻는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가난은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자극해 주었으니까요." 라데크가 신문 파는 노파를 심술궂게 돈으로 놀린다. "2백 프랑... 3백... 자! 여기 있어... 5백 줄까? ...하지만 이걸 벌려면 할멈은 뭔가 노래를 불러야 해. 춤도 추고 말이야! ...우선 노래부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장면을 읽는 듯했다.

괜히 유명한 작품이 아니었다. 역시 명작이다. 억울하게 죽을 수 있었던 사형수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교차되어 정의를 실현하나 씁쓸함은 남는다.

2014.05.02

이미 읽은 책이지만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터라 다시 추리해야 했다. 역시나 또 어긋났다. 이 추리소설에서는 독자가 작가를 이길 수 없다. 이야기 설정 자체가 읽는 사람 약올리는 구조다. 

조르주 심농의 '타인의 목'은 추리 게임으로써는 불공평한 소설이다.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용의자들이 나열되고 어떻게 해도 서로 들어맞지 않는 단서 조각들을 펼쳐진다. 심지어 범인이 스스로 형사 앞에서 나서서 사건의 진상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닥달을 하는 판국이다.

범죄 주인공이 머리가 비상한, 의학도다. 그의 재능은 의사가 환자를 진찰해서 병을 찾아내듯 상대의 약점을 치밀한 관찰로 알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며 불치병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없다. 그는 그저 돈만 많은 인간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이 역겨워 자신의 능력을 범죄에 활용한다. 완전범죄를 완성하지만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다. 돈은 갖고 있어봐야 쓸 데도 없다.

하여, 살인자 라데크는 형사 매그레에게 자신의 범죄를 고백해서 무명의 환자로서 죽기 전에 천재적 범죄자로서 사형을 당하길 원한다. "꼭 사형이 되도록 힘 좀 써주십시오, 반장님!"

이 소설은 읽고나면 불편한 심기가 남는다. 가난에 대한 분노, 좌절된 꿈, 역겨운 인간들이 잘살고 잘먹고 잘 지내는 세상.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푸아로는 사건이 해결되면 그걸로 끝이지만, 조르주 심농의 쥘 매그레는 범인의 감정을 끌어안고 인생의 씁쓸함을 곱씹으며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간다.

2014.10.09


오랜만에 전자책으로 통독했다. 단문 간결체이고 분량이 중편과 장편 사이라서 금방 읽었다. 더구나 마성의 가독성을 자랑하는 전자책이었으니.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쉬웠다.

'타인의 목'은 조르주 심농이 쓴 매그레 시리즈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 추리소설과는 너무나 달라서 그런지 우리나라 독자들한테 그리 인기가 없는 편이다. 시리즈 전체 번역 출간을 기대했던 출판사조차 두손 들고 포기했다.

범행 자체는 간단하다. 진상을 모르는 초중반에는 신기하고 흥미롭긴 하겠지만.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에서 선보이는 신묘한 트릭 같은 것은 없다. 사건의 진상을 알았을 때는 우와 놀랍기보다는 아 그런 거였구나 정도의 느낌이다. 이래서 아무래도 선뜻 매그레를 읽지 않으려는 것 같다. 추리소설의 재미라고 느끼는 것이 빠졌다고 여기리라.

일단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어쨌거나 끝까지 읽게 된다. 그 과정이 썩 유쾌하지 못하다. 끝도 그렇다. 범인이 바로 눈앞에 있고 아예 미행을 붙인 형사랑 술도 같이 마시질 않나 아예 매그레랑 같이 이동하기도 한다. 반장한테는 계속 진상을 알 수 없지롱 하면서 약 올리는 녀석이라니. 나중에 역전이 될 때까지는 이 놀림을 감당해야 한다.

소설가는 제목부터 정하고 그 제목에 맞는 소설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타인의 목'은 그런 경우였다. "아무 아이디어도 없는 상태에서 발행인에게 제목부터 통보했단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경우 '왜 그들은 에반스를 부르지 않았을까?'가 여기에 해당된다. 책 제목을 책 내용보다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제목만 이미 정해도 책의 절반 이상을 해결되었다고 느낄 정도라니.

2021.11.18

Posted by lovegood
,

매그레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 2012년

형사가 아닐 때 수사는 어떻게?

형사인 처조카가 수사 중 살인누명을 쓰게 된다. 매그레는 경찰생활에서 은퇴하고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다시 수사에 나서야 한다. 경찰공무원이 아닌, 일반인 매그레는 과연 어떻게 수사할 것인가?

추리소설에서는 경찰이 아닌 사람이, 대개는 사립탐정이고 간혹 그냥 민간인,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수사를 척척 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사실적이지 못하다. 경찰 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는 수사가 대체로 갑갑하고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다.

형사가 아닐 때 수사는 어떻게 하나? 형사는 아니지만 범죄현장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이용한다. 이번 사건 속성상 해당 범죄집단에 접근해서 정보를 얻기는 형사 신분으로는 어렵기도 했다.

그런데 일이 썩 잘 풀리지 않는다. 처조카는 구속되고 조사하라고 시킨 여자는 풍기 단속국 경찰에 잡히고 자기 후임으로 반장이 된 아마디외와는 불편한 관계다.

범인 혹은 살인 교사범이 뻔히 보이나 형사가 아닌 매그레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같이 일했던 부하직원 뤼카랑 얘기해 보지만, 여전히 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사건은 추리보다는 추격이 많다. 차로 치여 죽을 뻔하기도 하고 범죄 패거리들한테 현직 형사가 아니라면서 비웃는 소리까지 듣는다. 모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취조를 직접 할 수 없는 매그레는 무력감을 느낀다.

이 판국에, 용의자들 중 한 명을 감시하라고 시킨 여자는 그 남자랑 사랑에 빠져 버렸다. 어쩌란 말인가.

매그레는 장본인 카조와 일 대 일로 대화를 하는데, 매그레 반장의 주특기 인간 분석으로 게임은 끝난다. 자만에 빠진 자는 자백하고 만다. 바보.

쓸데없는 멜로드라마나 복잡한 애증 따위는 걷어내고 오로지 인간 분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외젠과 페르낭드의 사랑을 디저트로 마련해 놓긴 했다.

본래 매그레 시리즈는 지난 18편 '제1호 수문'에서 마무리될 예정이었으나, 은퇴 전 마지막 사건이라고 나온다, 하나 더 쓰기로 해서 마지막 매그레 시리즈라는 의미로 제목을 '매그레'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매그레' 이후 다시 매그레 시리즈가 시작된 것은 8년 후였다고 한다. 매그레 시리즈는 총 75권이라고.

국내에서 매그레 시리즈 전집 출간은 결국 불발이 되었다.

처조카의 누명을 벗겨라


제목 참 간단하다. 주인공 이름이다. 매그레. 끝. 시리즈물은 19편이나 써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심드렁한 것이다. 이 소설 집필 당시 작가의 상황이 그랬다. 마침 출판사를 바뀌었다. 전편에서 매그레 반장은 파리 경찰청 형사 생활에서 은퇴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자, 이제 매그레는 뭘 하지? 탐정이니까 사건 수사를 해야지. 배가 항구에만 있을 수 없듯, 탐정은 계속 사건을 수사하고 살인범을 찾아야 한다.

은퇴 후 부인이랑 시골 생활을 적응 중인데 아침부터 처조카가 쳐들어와서 다짜고짜 일을 맡긴다. 감시 중이었는데 사람이 죽었고 바보같이 그 사람을 죽인 총을 손으로 만지고 자살한 것처럼 그 총을 옆에 놔 두었다는 것이다. 형사 맞아? 멍청한 녀석!

당연히 처조카는 살인범으로 몰려 철창에 갇힌다. 매그레는 처조카의 누명을 벗기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나선다.

딱히 수수께끼가 없는 하드보일드 풍이다. 매그레는 총을 들고 곧장 범죄 주동자를 향해 돌진한다. 특이하다면 직접 살인한 자가 아니라 살인을 교사한 자와 맞선다.

이야기 끝에 로맨스가 하나 있고 역시나 이번에도 전원일기 냄새 폴폴 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인기 없는 매그레 시리즈

나는 전자책 세트로 읽었다. 도서관에 가면 이 책이 1권부터 19권까지 얌전하게 꽂혀 있다. 사람들이 대출을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매그레 시리즈는 열린책들의 대대적 마케팅에 홍보를 했으나 판매는 부진했다.

이런 상황이면 19권 이후로 매그레 시리즈가 나올 가능성은 낮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은 열린책들이기 때문이다. 이 출판사의 끈기 하나는 정평이 나 있으니까.

일부 매그레 마니아만 속이 타들어간다. 75권 전부 출간될 거라 예상하고 그에 맞는 책꽂이까지 손수 만들어 놓은 분이 계셨다. 대개는 서재 책장에 75권이 들어갈 부분을 비워두었다. 기대는 실망을 낳았다. 매달 2권씩 나오던 책이 1년도 안 되서 중단되었다. 어쩌란 말인가.

매그레 시리즈 판매 부진에서 영국식 정통 추리소설의 국내 인기를 다시 확인했다. 국내 추리소설 독자들은 애거서 크리스티식 수수께끼 풀이에 익숙하고 이를 벗어날 마음이 없다. 사건 발생, 사건 수사, 사건 해결. 수수께끼 풀이. 반전 짜잔. 범인은 너야! 우와, 이 놀랍고 기막힌 트릭!

매그레 시리즈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매그레식 소설이다. 살인범을 잡는다는 장르 규칙 외에는 추리소설의 요소가 거의 없다. 추리소설계의 전원일기랄까. 구식 멜로드라마 느낌이다.

19권까지 일주를 했으니 추천작을 골라 본다. 19권 다 읽는 것은 매그레 팬이 된 이후에 도전하라.

매그레 시리즈 추천작

1. 타인의 목 :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작이다. 사형수를 일부러 풀어주는 시작부터 범인이 매그레 반장 앞에서 약을 올리는 중후반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특히, 범인의 고백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력이 최고다.

2. 갈레 씨, 홀로 죽다 : 매그레 시리즈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인생 극장 같은 분위기랄까. 씁쓸한 인생살이랄까. 이를 잘 묘사해내며 감동을 만들어낸다. 제목에서 이미 사건의 진상을 다 나와 있다. 하지만 이야기 끝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사골국물 같은 맛을 낸다.

3. 교차로의 밤 : 하드보일드식으로 총격전이 벌어진다. 교차로에 있는 세 가구의 기이한 긴장감에 치명적 여인의 등장까지,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Posted by lovegood
,

제1호 수문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완전 드라마네


대개 추리소설에서는 드라마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 시리즈 '매그레'는 유별난 소설이다.

전혀 감상적일 것 같지 않은 제목, '제1호 수문'에 흔한 범죄 수수께끼 이야기려니 읽었다가 소설 후반부에서 아주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드라마를 쏟아내는 것에 기겁하게 되리라.

초반 범죄 미스터리는 독자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수문 근처 물에 빠닌 노인. 등에 칼을 맞은 사내. 자살. 살인. 복잡하게 얽힌 애증의 실타래.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드라마적인 작품이다. 소설 내에서 드라마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언급할 정도다. 그리고 실제로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매그레는 형사 반장으로서는 이번이 마지막 사건이다. 아직 정년은 멀었지만 일찍 은퇴를 결심하고 결행한다. 아마도 출판사를 파야르에서 갈리마르로 옮기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다음 권 19번째 '매그레'를 파야르에서 출판하고 다음 편부터는 갈리마르에서 펴낸다.

뒤엉켜 버린 욕망의 사슬

뒤엉켜 버린 욕망의 사슬 속에서 끝장나 버린 인간. 조르주 심놈이 매그레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인간상이다. 그런 사람이 절절하게 고백하는 말을 들어주는 게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씁쓸한 인생 드라마를 보여주며 끝내는 식이다.

자수성가한 사내, 술꾼 노인, 미친 여자, 그리고 아기. 여기에 자살이 이어진다. 겉으로 들어난 모습만 봐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 이야기는 사건 뒤에 숨은, 인간군상의 어처구니없는 진상을 보여준다. 정말이지 소설이다. 사연과 사람이 꼬이고 꼬여 불행으로 치닫는다.

범인의 장황스러운 고백을 듣고 있으면 도스토옙스키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보는 것 같다.

시리즈가 18편까지 오니, 우리의 주인공 매그레는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경찰 생활에서 은퇴한다.

Posted by lovegood
,

리버티 바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멜로드라마, 어떤 사랑 이야기

매그레 반장 추리소설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는 중이다. 이미 몇 년 전에 19권까지 완독했는데, 다시 읽고 싶어서였다. 시리즈 초반부의 명작 걸작은 세 번 이상 읽었지만, 그 외 소설은 이렇게 시리즈 19권 전부 읽기를 계획하지 않으면 다시 읽지 않게 될 터였다.

순서대로 읽다보니, 이번 '리버티 바'는 예전 작품의 조합으로 보인다. 사진만 보고, 시체는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가 지냈던 곳을 둘러보고 그 남자의 삶을 간파해 버린다. '갈레 씨, 홀로 죽다'다. 사건 특유의 그 인간적 냄새와 분위기에 취해 버린, 매그레 반장. 하필 이번 주인공은 매그레와 비슷한 체형에 나이도 비슷하다. 살해당한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자신의 여자들한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준다는 유서를 남긴 남자. '창가의 그림자'에 나오는 못말리는 쿠셰 씨.

이번 '리버티 바'가 그러면서도 다른 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돈 때문에 일어난 살인 같았으나 실은 사랑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범죄소설을 읽으려다가 멜로드라마에 빠진다. 살인범을 놓아주는 매그레 반장에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씁쓸한 인생. 손수건이 필요한, 징헌 인생 이야기.

추리소설인데 종종 문학작품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헤밍웨이, 마르케스, 헨리 밀러, 지드, 카뮈, 발터 벤야민. 이들이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격찬하는 이유는, 추리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적 드라마가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로 사람 가슴을 후벼파기 때문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범인은 몰랐고, 밝혀진 진실에서 또 다시 슬픈 감정이 북받친다. 살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다.

불쌍한 사랑 이야기


매그레 반장 시리즈를 추리소설로 읽는 것은 그다지 권장 사항이 아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영국식 정통 추리소설에 익숙해서 추리소설이라고 해서 읽었는데 이런 멜로드라마식 이야기가 나오면 실망하기 쉽다.

이야기의 초점은 살해당한 자와 살해한 자의 사연과 감정에 맞춰 있다.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대개들 단서를 모으고 용의자를 따지고 과연 누가 어떻게 죽인 것인지 짐작해 본다. 이는 심농의 소설에서 무력화된다.

소설의 문체와 어투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사람의 인생살이와 구구절절한 사연에 맞춰 있다. 매그레 반장은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만나는 형사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피해자와 용의자의 삶과 감정으로 들어간다.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느낀다.

'리버티 바'는 인생 종착역 같은 분위기의 허름한 술집 이름이다. 거기에 한 남자의 방탕한 삶이 있고 여자 넷이 관련되어 있다. 이중 한 명이 말년의 진정한 사랑이 찾아왔다고 여기다가 살인까지 벌어진다. 불쌍한 사랑 이야기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처리한다. 애써 범인 잡아서 시끄럽게 할 이유는 없었다.

이 소설을 읽고 있자니, 1980년대 초가 생각난다. 술집, 악다구니를 쓰며 싸우는 두 여자, 이를 말리는 청년, 한 구석에서 멀뚱하게 두 여자가 싸우는 걸 보는 늙은 남자. 당시 초등학생이었기에 무슨 일이지 몰랐고 나중에야 이해했다.

사는 게 뭔지.

Posted by lovegood
,

안개의 항구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죽이려다 치료하고 다시 죽인다


몇 년만에 다시 읽었다. 초반부 이야기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것을 수술한 채 나타난다.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말하는 능력도 상실했다. 마침내 그를 안다는 사람이 나타난다. 선장이란다.

이후 상황은 더 수수께끼가 된다. 집으로 돌아간 선장이 독살을 당한다. 나타난 일만 보면 도대체가 말이 안 된다. 죽이려다가 살리고 다시 죽였다? 장난하나. 매그레 반장은 기괴한 생각 하나를 떠올린다. 애초에 그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만 지우려고 했다.

제목 '안개의 항구'처럼 좀처럼 뚜렷하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분위기에 독자와 탐정은 사로잡힌다. 다들 뭔가 숨기고 있다.

여행을 위해 요트를 사려는, 부자 남자가 용의자로 나타나는데...

매그레 시리즈가 추리소설이지만 독자와 정당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이상한 범죄 상황에 처해서 당황하다가 끝에서야 범죄자의 사연을 듣고서 해결되는 식이다. 살인범을 잡고서 놓아주거나 애써 외부에 알리지 않는 형사. 인간 드라마에 치중한 '소설'이다. 범죄 수수께끼 '게임'만 하는 게 아니다.

머리에 총상과 수술 자국

도입부는 환상적이나 지루하고 답답한 중간을 거쳐 전형적인 심농의 눈물 젖은 드라마로 끝난다. 고전 추리소설들이 이런 식의 맬로 드라마 사연으로 사건의 정체를 밝히는데, 너무 구식이라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먼지를 먹는 것 같았다.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내 사랑, 내 자식, 불운, 가난, 성공, 용서의 구닥다리 이야기를 꺼네 놓으니 할 말을 잃었다.

한 사나이가 발견된다. 말을 못한다. 머리에는 총상 자국이 있고 누군가 수술을 해 준 모양이다. 과연 이 자는 누구이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수소문 끝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신원을 밝혔다. 선장이란다. 둘이 부부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같이 소박하게 잘 살았다고.

여인은 사내를 데리고 집으로 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말도 못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 불쌍한 사내를 누군가 독살했다. 선장의 통장에는 어머어마한 돈이 입금되어 있고 그 유산 상속자는 여인이다. 여인에게는 오빠란 자가 있는데, 의심스럽다.

시장을 비롯한 여러 용의자들이 말을 통 하지 않아서 범인을 잡아야 하는 입장으로서는 수사 내내 갑갑하다. 매그레 반장이 툭툭 사건의 진상 일부를 툭툭 말해주며 이야기의 종결로 치닫는다.

다른 매그레 시리즈보다 분량은 많았지만 가장 허탈했다. 사건의 진상은 끝까지 알 수 없어 궁금하기보다는 답답했다.

Posted by lovegood
,

베르주라크의 광인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침대 위에서의 추리

항상 사건 수사 현장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던 매그레 반장이 이번에는 부상으로 침상에서 수사를 한다. 소위 안락의자형 탐정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침대에서 머리만 굴리는 것은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수사를 지시해서 정보를 모으고 정보를 확인한다. 수사 요원으로 두 명을 두었다. 은퇴한 형사, 그리고 그의 아내. 특히, 매그레 부인의 수사력이 보통이 아니다.

미치광이가 살인을 하고 돌아다니는 중이고, 계속 여자가 살해당한다. 어떻게든 이 광인을 잡아야 하는데... 열차에서 매그레와 같이 뛰어내린 후 그에게 총을 쏜 자는 이 정신병자랑 동인 인물일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초중반 수수께끼 상황은 후반에서 그 정체가 기괴한 삶과 꼬인 애정행각으로 밝혀진다.

추리게임으로, 독자가 절대로 짐작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니까 애써 추리하지 말고 그냥 되는 대는 읽는 것이 속 편하다.


찰떡궁합 부부 탐정

초중반은 상당히 흥미로우나 결말은 썰렁했다. 허기야 대개의 추리소설이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 복잡다단한 인간 애증 관계를 숨겼다가 밝히는 식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모양새는 구식 맬로물을 보는 듯했다. 옛날 소설인데 당연하긴 하지. 결말이 아쉬웠다. 여유도 없이 냉정하게 끝낸다. 검사장, 불쌍한 인간 같으니.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하면 눈을 떼기가 어렵다. 시작부터 기이하고 온갖 수수께끼가 쏟아진다. 친구 집에서 쉬려고 열차를 탄 매그레 반장은 한 사내가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수상하게 여긴 매그레는 열차에서 내리는 그 사내를 무작정 추적하다가 총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만다.

깨어나보니, 여기는 병원. 자신을 미치광이 살인범으로 오해한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다. 이른바 '베르주라크의 광인'이라 불리는 살인마는 젊은 여자 심장에다 커다란 침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매그레는 수사에 착수한다. 해부학적 지식을 갖췄다면 의사일 가능성이 높다. 처제라고 하는데 지나치게 예쁘다. 뭔가 있을 것 같다.

탐정들의 추리력과 관찰력이 소설에서 과장되어 표현하듯, 매그레 반장의 사람 파악 능력도 그렇다. 여자를 보는 순간부터 외모 평가를 시작하여 어떻게 사는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조금만 예쁘고 몸매 좋다 싶으면 불륜이거나 여러 남자들이랑 연애한다. 못생긴 여자는 대개 살인범이 된다. 소설이니까 그런 거지.

매그레 반장이 안락의자형(정확히는 호텔 침대) 탐정 역할을 하긴 시리즈 순서상 처음이다. 수집한 사실을 종이에 쓰며 이래저래 생각하는 모습은 푸아로처럼 보인다. 악몽까지 꾼다. 아픈데 추리는 잘 안 풀리니.

매그레 반장과 매그레 부인이 척척 착착 수사를 해내는 모습이 귀엽다. 찰떡궁합 부부 탐정이다. 움직일 수 없는 반장을 대신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결과를 보고하는 매그레 부인의 수사 솜씨가 훌륭하다.

주변 사람들 살살 약올리는 매그레를 보고 있자니, 은근히 웃긴다.

Posted by lovegood
,

플랑드르인의 집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실종사건, 의외의 범인


실종사건을 수사해 달라는 부탁에 국경지대(벨기에와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떠나는 매그레. 예전 작품 '네덜란드 살인 사건'처럼 뭔가 갑갑하고 압도적인 사회 분위기에 휩싸인다. 특히,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몰리고 있는 집안(프랑드르인 가족)의 여자가 부르는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데...

밝혀진 살인범은, 정말 의외였다. 뒤통수 맞은 기분이다.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격일 터.

매그레 반장은 범인의 자백을 듣지만 체포하지 않는다. 자기 부인한테는 그냥 '가족사'라고 할 뿐이다. 1년 후 우연히 위조 지폐 사건 조사 중 다시 만난 살인범. 사장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이 소설 처음 읽었을 때는, 기록(결말과 후일담이 구수하다)을 보면, 무척 좋게 보았다. 하지만 2년 정도 지난 지금에서 읽은 기분은 썩 좋게 보이지 않는다.

추리소설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취향이겠는데, 이런 식의 인간 드라마 인간 극장 같은 것보다는 트릭을 중시하는 사람한테는 매그레 시리즈는 영 불만스러운 소설이다.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주인공

매그레 반장이 사건 의뢰를 받아서 실종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보통 추리소설에서는 사람이 그다지 자세히 깊게 그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등장인물들이 종이 인형으로 보일 만큼 얇고 전형적으로 그린다. 어차피 범인 잡기 수수께끼의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애써 그럴 필요가 없는 법이다. 허나, 조르주 심농은 매그레 반장의 추리소설에서 수수께끼보다 인물을 중시한다. 아주 평범해 보일 법한 사람을 무척 독창적으로 돋보이게 그려낸다.

사연에 집중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주인공 매그레/작가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서 하지 않는 일을 한다. 살인범 혹은 자살자한테 깊은 감정 이입을 해대는 것이다. 트릭의 정교함과 기가막힌 반전에 감탄하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감동하게 만드는, 심농 스타일이다.

심농은 범인잡기라는 장르 규칙을 따르면서 실제로 노리는 것은 인생 극장이다. 인간 군상의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데 놀라운 재능을 가진 작가다. 생생하고 정밀하게 사람을 그려내는 솜씨가 경이롭다.

추리소설은 역시 작가한테 당해야 맛있게 읽힌다. 또 당했다.

추리소설이 반전을 만드는 기법은 거기서 거기라서 읽을수록 규칙처럼 보인다. 반칙 아닌 반칙인데, 독자의 일반적인 상식과 기대를 배신하면 놀라운 반전을 만들 수 있다. 화자가 범인이거나 경찰이 범인이거나 심지어 탐정이 살인범으로 밝혀진다. 가장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자를 살인범으로 드러나게 하면, 독자는 경악 혹은 발악(?)하게 된다.

결말과 후일담이 구수하다.

Posted by lovegood
,

생피아크르 사건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예고살인 + 살인범 죽음 예고


"위령의 날 첫 미사 도중에 생피아크르 성당에서 살인이 저질러질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예고살인. 미사 도중 백작 부인 사망. 수법은 예배 도중 펼쳐 본 미사 경본에 끼어 놓은 신문 기사 한 조각. 충격으로 인해 심장 마비로 죽었던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짓을?

살인 용의자는 주변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다. 백작 부인의 아들 모리스. 백작 부인의 비서 장 메테예. 돈 때문에 살인을? 남은 재산은 거의 없는데... 미사 경본 관련 의심 인물들. 복사 어린이, 성당지기, 종지기, 신부. 고티에 영감. 고티에 영감의 아들 에밀.

후반부에서 살인범을 밝혀내는 이는 매그레 반장이 아니라 백작부인의 아들 모리스다. 용의자를 모두 모아놓고 정중앙에 권총을 올려놓고는, 살인범의 죽음을 예고하다니... 기가 막히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일종의 복수극으로 끝맺는다.

찝찝하다. 백작부인의 문어발 애정행각은 그렇다 치자. 살인예고장을 수사국에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알 수 없다.

살인 예고장

예고 살인이다. 밀실 살인만큼 열광할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중에는 제목이 '예고살인'인 것도 있다. 장소는 물론이고 몇 분 몇 초까지 지정해서 신문 광고를 한다. 조르주 심농의 소설 '생피아크르 사건'은 그보다는 덜 정확하지만 여전히 예고 살인이다. 초반 호기심과 긴장감을 꽉 틀어 쥐며 이야기는 출발한다.

매그레 반장은 살인 예고장을 중얼거리면 살인을 기다린다. "위령의 날 첫 미사 도중에 생피아크르 성당에서 살인이 저질러질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살인은 실현된다.

이 소설은 독자의 일반적인 기대 두 가지를 저버린다.

첫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주인공이다. 매그레는 사건 주변만 두드리며 자기 감상에 빠져 전작과는 다르게 무척 감정적인 상태로 화가 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릴 적 환상과 이상의 상징이었던 백작 부인이 살해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참으로 더럽게들 그녀의 피를 빨아먹으며 살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 예고 살인이 멋진 기교일 것이다. 심장병을 앓다가 충격적인 기사 쪼가리 하나 보고서 죽는다는 설정인데, 실망이다. 더 정교하거나 더 영리한 트릭이어야 하지 않나. 기대에 비해서는 참 어이없이 순진한 계략이다.

별로 자랑스러운 것 없는 인간이 사건 용의자들을 죄다 모아놓고 '푸아로 피날레'처럼 쇼를 해서 살인범을 밝혀낸다.

매그레 시리즈의 끝맛은 씁쓸하다. 도대체가 정이 가는 인물이 하나도 없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시궁창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완벽한 세상(생피아크르 백작 부인)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난다. 매그레는, 돈 몇 푼에 거짓말을 해대는 꼬마까지 있는 아주 촘촘한 지옥의 거미줄 속에서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 백작 부인의 아들을 본다. 사는 게 참 허탈하지.

Posted by lovegood
,

창가의 그림자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갑부 남자 쿠셰가 살해당한다. 금고에 있었던 돈이 사라졌다.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그의 주변 친인척 인물들이다.

첫째, 그의 두 번째 아내. 딱히 돈이 궁하지 않았지만, 웬만큼 사는 집안의 딸이었으니까, 그의 돈을 보고 결혼하긴 했다.

둘째, 그의 첫 번째 아내. 돈에 환장한 여자다. 남편이란 자기가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만 여길 뿐이다. 쿠셰가 돈을 잘 벌지 못하자, 이혼하고 연금 확실하게 나오는 공무원한테로 간다. 하지만 이 공무원도 그리 돈은 잘 벌지 못했고 승진도 잘하지 못해서 돈 많이 벌어지 못하기는 마찬기지다. 이러고 있는데, 쿠셰가 벌인 사업이 잘되어서 갑부가 되었다. 속이 뒤집힌 이 여자. 우연히도 쿠셰의 사무실이 훤히 보이는 맞은편 집에서 살고 있다.

셋째, 그의 정부. 쿠셰는 갑부가 되어 돈도 교양도 되는 여자랑 결혼했으나 영 마음이 불편해서 편하게 만날 여자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이 여자는 돈 욕심이 거의 없고 자신은 부자가 될 운명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체념하고 그냥 산다.

넷째, 첫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방탕한 생활을 하는 백수다. 갑부가 된 아버지한테 종종 찾아가서 돈을 타다 쓴다.

따라서 살인 용의자는 다섯 명이다. 첫째 부인. 둘째 부인. 정부. 아들. 첫째 부인의 남편.

제목에 결정적 힌트가 있고 정황상 가장 유력해 보이는 자가 범인으로 밝혀진다.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가 그렇듯, 이번에도 '사람'을 보여준다. 이 '못말리는 쿠셰'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고서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았는데, 아이고야 그 세 명의 여자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준다고 써 놓았다.

돈에 돌아버리면 사람이 정말 이상해진다. 쿠셰가 돈이 없었다면 그렇게 죽임을 당했을까. 그 여자가 돈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돈이 뭔지.

돈 때문에 파멸되는 인간 군상들


돈 때문에 파멸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매그레 시리즈의 주된 초점인 듯하다. 그런 면에서 '창가의 그림자'는 아주 전형적인 드라마다. 살인만 빼면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로 선보여도 별다를 것이 없다.

첫째 아내, 둘째 아내, 정부. 돈 뜯어가는 전처 자식. 돈 먹는 하마 같은 여자를 둔 공무원. 돈 많이 벌게 된 사내. 이 정도 인물만 나열해도 벌써 누가 죽고 용의선상에 누굴 둘 지 뻔히 나온다.

이야기 자체로만 보자면 '창가의 그림자'는 흔한 통속소설이다. 살인자를 잡는 형사반장이 있어서 추리소설이니 범죄소설이니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 정말 그렇다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작가는 특정 문장을 반복하면서 기묘한 감정의 물결을 만들어내는데, 이 문장은 대체로 범인의 심정과 상황을 절실하게 표현한 '핵심'이자 '상징'이다. 전작 '갈레 씨, 홀로 죽다'는 이런 조르주 심농 스타일이 극대화되어 있다.

특히, 이야기 끝 장면에 범죄자의 종말과 매그레 반장의 일상을 겹쳐놓으면서 욕망의 씁쓸함과 일상의 달콤함을 대조시켜 그 감정적 효과를 배로 늘린다.

수수께끼 풀이와 범인 잡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범인의 그 극적인 순간 감정을 갑자기 터진 화산처럼 느낄 수 있게 묘사한 문장력은 심농의 재능이다.

Posted by lovegood
,

센 강의 춤집에서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카뮈 이방인 태양


사형을 받기 직전에 사형수가 매그레 반장한테 옛날에 있었던 살인 사건 목격담을 이야기해준다. 매그레는 그 살인 사건을 조사하러 간 '센 강의 춤집에서' 요란스럽고 장난스럽게 노는 부부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중 한 명은 매그레가 형사임을 알아채고 친한 말투로 술을 권한다.

살인이 일어나고, 유력한 용의자는 도망을 치고, 그를 추적하는 형사들. 사건의 진실은 이미 준 힌트로는 결코 알 수 없다. 범인이 자백하기 전까지는 범인이 누구라고 명확하게 밝힐 수 없었다. 간통으로 서로 얽히고 협박에 빚에 뭐에 지쳐버린 이는 결국 자백한다. 홀가분하게 감옥행을 자청한다.

카뮈의 유명한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그 유명한 문장은 조르주 심농의 이 소설 '센 강의 춤집에서'가 출처였다. "그건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그날따라 난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는데... 어쩌면 태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난 총을 빼앗으려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해당 쪽을 모르겠고 9장에 나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 이방인, 김화영 역

 

평범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실은 일탈과 욕망과 권태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분위기다.

 

인생의 씁쓸한 진실 한 자락


겉으로 봐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중산층 부르주아 부부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의 진실은 지루하고 추악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이 가득하다. 짜릿한 불륜을 위해 남자들이 벌이는 어릿광대 짓은, 씁쓸하면서도 진실로 그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사형을 앞둔 이한테서 옛날 살인에 대한 간략한 몇 가지 단서만 듣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기어코 진실을 밝혀내고야 마는 매그레 반장이나, 삶의 위선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 범죄자나, 산다는 게 참 뭔지 싶은 것이다.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틀거리 안에 인생의 씁쓸한 진실 한 자락을 짙고 길게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이야기는 살인범 잡기보다는 살인범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그 사연이라는 게 참으로 공감이 간다.

셜록 홈즈와 에르퀼 푸아로는 살인범을 찾아 응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추리소설은 명쾌하다. 삶은 명확하고 문제는 해결된다. 어린이를 위한 로봇 만화영화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고 정의는 승리한다. 이래서 추리소설은 애들이나 읽는 거고 문학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이 오락물이 아닌 문학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뭔가 더 있어야 한다.

Posted by lovegood
,

게물랭의 댄서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매그레 부인의 질투

초반부는 청년 두 명이 나오고 지루한 편이었다. 그러다가 '어깨 떡 벌어진 사내' 매그레 반장이 자진해서 살인범으로 잡혀 들어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자살했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면서 중후반부터는 재미있었다.

'게물랭'은 카바레 이름이다. 춤을 출 수 있는 댄서가 마련되어 있는 술집이다. 이곳에서 부자로 보이는 남자가 죽은 것을 발견하고서 두 청년이 도망친다. 둘은 가장 유력한 살인범으로 몰린다.

사건은 더 황당하게 전개된다. 시체가 호텔에서 쓰는 버들가지 트렁크에 담겨 동물원에서 발견된다. 매그레 반장이 진범을 잡기 위해 일부러 가짜로 살인범으로 잡혀서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범행을 자백하고 자살했다고 허위 정보를 알린다.

마침내 들어난 사건의 전말은 독자의 예상을 완전히 깨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 추리 게임은 독자의 추리를 거부하고 있다. 알려진 단서만으로 진범을 알기는 대단히 어렵다.

사건 해결 후 후기로 덧붙은 장면에서 매그레 아내의 게물렝 댄서에게 하는 질투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에휴, 남자들이란 다 똑같아!" 크크.

소설의 사건 발생 장소는 작가 조르주 심농의 고향인 벨기에의 리에주다. '게물랭'은 작가가 젊은 시절에 다니던 실제 심야 카바레 업소 이름이라고. 책 출간 후에 이곳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고. 프랑스 출신 수사관이 파견되는 것까지 같았단다. 우연치고는 참.

 매그레 부인의 질투


춤추는 술집, 게물랭 카바레에서 금고를 털려던 두 청년은 부유해 보였던 남자 손님의 시체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도둑질을 포기하고 도망친다. 과연 누가 죽인 것일까? 자신들을 졸졸 뒤쫓는 '어깨가 떡 벌어진 사내'가 의심스럽다. 둘은 경찰에 의해 살인범으로 몰린다. 그런 와중에 그 사내가 경찰에 잡히고 자백 후 권총 자살 연극을 한다. 매그레와 경찰들은 카바레에 잠복하다가 사건의 진실을 발견한다.

주인공 매그레 반장이 종종 별난 짓을 한다. 사형을 앞둔 사람을 풀어주는가 하면, 호기심에 남의 가방을 뒤져본다. 이번에는 자진해서 살인범을 자청하고 나서고 심지어 자백하고서 자살했다고 총까지 쏘는 쇼를 벌인다. 귀엽다.

사건 트릭이 단순하다. 고전 추리소설 많이 읽은 독자라면 금방 간판할 수 있다. 1931년 발표작이다. 옛날 소설이니까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어라. 기발하고 멋진 트릭을 기대하지 말고 예스러운 낭만적 이야기 분위기를 즐겨라.

'전원일기'스러운 마무리에 웃음 짓게 되리라. 매그레 부인의 질투가 사랑스럽다. 이 맛에 매그레 시리즈를 읽는다.

Posted by lovegood
,

선원의 약속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팜므파탈


'네덜란드 살인 사건'에서는 어장 관리 하는 매력적인 여성을 그려냈다면, '선원의 약속'에서는 성적 매력이 넘쳐서 주변 남자들을 완전히 정신이 나가게 할 정도의 여자를 그려낸다. '교차로의 밤'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치명적인 여자, 남자를 파괴할 정도로 매력적인 여자, 팜므파탈이다. 그런 여자한테 정신이 팔려서 자기 파멸에 들어선 자의 고백은 인상적이어서 책을 읽은 다음에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이해 못 하시겠어요? 전 미쳤었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어요... 여기 돌아온 후에야 깨달았어요. 생각해 보세요! 그 검은 선실이 있었고... 사람들이 주변을 맴돌았어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죠. 제겐 그게 제 삶의 모든 것처럼 보였어요... 그녀가 '내 큰 아기'라고 속삭이는 걸 다시 듣고 싶었어요..."

원양어선에 팜므파탈을 배에 숨긴 선장. 그리고 이를 알아차린 몇 선원. 그들 사이의 질투와 광란. 여기서 플러스 원이 되는 숨겨진, 혹은 침묵해야만 하는 비극.

추리는, 매그레 반장의 머릿속 당시 상황 재현은 망망대해 선상에서 여자 하나를 놓고 서로 질투하는 남자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가 빠진 것이다. 그런 질투 정도로 자살하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것이다. 게다가 선장의 죽음 또한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남은 하나의 조각 그림을 찾아내 맞추고 사건은 해명되어 종결된다.

일 년만에 다시 읽었는데, 아무래도 처음 읽었을 때만큼 재미를 느끼긴 어려웠다. 추리소설 속성상 어쩔 수 없으리라. 사건의 진상을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 읽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각 인물을 심리적으로 정확히 그려내는 글 솜씨는, 한 번 읽고 버리는 소설 장르에서는 과분해 보인다.

재미있는 추리소설 읽으려다가 씁쓸한 인생 드라마 한 편 읽게 된다.

참고로, 제목 '선원의 약속'은 술집 이름이다.

선상 질투극


추리소설에서는 독자를 혼란시키거나 범죄의 진상을 맞추지 못하게 시선을 다른 데로 끌어야 한다. 미인을 등장시키는 것은 흔해 빠진 수법이고 남자들을 파멸로 이끌 정도로 매혹적인 여자, 팜파탈이 등장하는 것은 진부한 클리셰다.

이 소설의 사건 전반에 드러나는 것은 배에 숨어 탄 '치명적인 여자'가 화근이 되어 남자 선원들이 서로 다투었다는 식이다. 하지만 매그레는 눈에 띄는 것이 아닌 숨어있는 사연을 캐기 위해 고심한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 '사실상 죽음으로 몰아넣은 거지만 물리적으로 죽인 건 아니군.'이었다. 양심 때문에 괴로워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가 죽였다고 할 순 없다. 사람 욕망이라는 게 단순하지 않다.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순간의 감정은 단지 질투였을까.

바람둥이 여자를 육지에서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지만 바다 위 고립된 섬인 배에서, 게다가 작은 배이고 승선 인원이 몇 안 되면, 남자들은 그 여자한테 미쳐 버리기 마련이다. 배에서 내려서도 욕망은 멈출 줄 몰랐고 이내 사악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허나, 이도 잠시였다. 여자는 다른 남자랑 눈이 맞아 떠나 버린다.

일상의 평온함을 어떻게든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저 깊숙한 곳에는 악마 같은 욕망이 억눌려 있지 않을까. 소설 마지막에 그런 욕망조차 세월 지나면 사라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매그레 역시 고개를 돌리며 발걸음을 재촉했고,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선상 미스터리? 선상 질투극이었다. 

Posted by lovegood
,

네덜란드 살인 사건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사회심리학


'네덜란드 살인 사건'는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설정과 가장 닮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용의자들은 서로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애증으로 묶여 있다. 어느 누구도 살의를 안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사가 들어가고 마침내 탐정/형사가 모두를 모이게 한 후 살인이 일어난 날 당시를 재연해서 범인은 밝혀낸다.

용의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사건을 재구성해서 범행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지적하는 것은 지난 '누런 개'와 '교차로의 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로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즘에도 보는 것처럼 해당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해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제목처럼 네덜란드로 가서 수사한다. 매그레 반장이 비공식 수사 의뢰를 받고 현장에 간 것인데, 외국이다 보니 말이 안 통해 통역을 둬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갑갑한 그 사회 분위기를 더욱 답답하게 느끼게 해 준다.

심농은 이 소설에서 보수적인 사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말 내가 그 옛날 네덜란다의 어느 곳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 편의 사회심리학 사례 보고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소설에서 그려낸 사회 모습은 우리나라 유교문화랑 비슷해 보인다. 체면을 중시하고 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온갖 추잡한 성추행과 불륜이 저질러진다. 겉으로만 보면 점찮지만 억압된 욕망은 위선의 탈을 쓰고 여기저기 배출되어 버린다.

모자에, 시가에, 권총에 물적 증거가 넘쳐나지만 매그레는 시큰둥이다. 살인이 발생한 주택의 도면을 받아들기도 하지만 매그래는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물적 증거와 현장 도면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중시하는 것이다. 범인 잡기 게임의 결정적 힌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의 머리 싸움 혹은 독자 속이기도 이를 이용한다.

심농의 매그레는 그런 식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매그레 반장은 인간을 관찰한다. 뭔가 대단한 추리력과 반전이 넘치는 트릭을 기대하는 독자한테는 실망이겠지만,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독자한테는 만족일 것이다.

남녀의 애증 심리를 무척 잘 파악해서 글에서 쓰고 있다. 다음 편 '선원의 약속'에서도 이어진다.

 

 

위선과 탐욕의 겉치례 사회


표지가 함정이다. 살인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잡아야 한다. 매그레는 이 원칙을 무시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난리치는 증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자니 시가니 다 그냥 넘어가버린다. 표지 그림에 있는 모자라서 사건에서 대단히 중요한 줄 알았더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사건 동기와 그 과정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남녀 애증 관계로 뻔하고 실망스러운 편이다. 그럼에도 정교하게 쓴 사회심리학 논문 같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실제로는 억압이 심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의 갈등과 심리가 절묘하게 묘사되었다.

매그레는 사건 용의자와 관계자를 모두 불러서 똑같이 재현하는 가운데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매그레는 범인을 찾았다고 자랑하지도 그렇다고 범인을 체포하지도 않는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자기 관할이 아니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쓸쓸히 홀로 퇴장한다. 위선과 탐욕의 겉치례 사회를 뒤집어 놓았으니 그가 환영받을 자리는 아니었다.

심농의 범죄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범인 잡기와 수수께끼 풀이에 몰두하는 오락소설과는 다른 차원이다. 해당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심리를 주인공 매그레처럼 차분히 따라가며 이해하면 인생의 씁쓸한 단면을 맛보게 된다. 사는 게 참 뭔지 싶다.

'네덜란드 살인 사건'은 막장 드라마처럼 남녀 애증 관계가 꼬일 데까지 꼬였다. 인위적인 설정이라서 지금까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다소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Posted by lovegood
,

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팜므파탈 + 푸아로식 파이널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이 소설 '교차로의 밤'은 좋아할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식 파이널과 대실 해미트의 팜므파탈이 등장하니까. 느와르 분위기의 범죄 영화 느낌이다.

소설은 살인 용의자로 유력한 '검은색 외알박이 안경을 낀 남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대개 오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으면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 남자 안데르센은 침착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본인의 본래 품성인 듯 보인다.

사건은 황당하다. 안데르센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보험업자의 차고에 있는 새 차 대신에 안데르센의 헌 차가 주차되어 있다. 화가 난 보험업자는 신고를 하고, 이에 안데르센 차고에 가 보니, 그 새 차가 있고 그 안에는 한 남자가 총을 맞아 죽고서 운전석에 엎드린 채 있었다.

시골 한적한 교차로에는 세 집이 있다. 보험업자의 집, 안데르센의 집, 그리고 자동차 정비소. 당연히 이 세 집 중에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살인범이다. 그래서 모두 감시한다.

안데르센에게는 여동생이 있는데, 안데르센은 동생을 가두고 외출한다. 뭐지? 이 여자가 팜므파탈로 나온다.

차고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남편을 보러온 여자는 교차로에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게 될 것이다. 뭐가 뭔지 정신이 없겠지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용의자들 모두 모아 두고서 매그레 반장이 끝에서 정리해서 설명해 준다.

푸아로식 파이널은 매그레 시리즈에서 지난 5편 '누런 개'에 이어 두 번째다. 용의자와 사건 관련 인물을 모두 소집한 후 매그레가 하나씩 하나씩 그동안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범인을 밝힌다.

우물 장면이 웃겼다. 마지막 장면은 남자의 순정이다.

액션 범죄 영화를 보는 듯한 소설

매그레 시리즈는 감기 걸렸을 때 읽게 되는 소설이 되어 버렸다. 아픈 와중에도 유일하게 읽히는 책은 심농 소설이다.

이 소설 후반부는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우물 안에서 난장판이다. 여자 한 명에 남자 세 명이 붙어서 아주 가관이다. 그래도 결말은 역시 심농의 심성이 잘 배어 있었다. 매그레 시리즈는 읽는 이유는 이 마지막 부분의 연민 때문이다. 소설 같은 얘기지. 순정을 다 바쳐 사랑하는 사내라니.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 가장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초반부 교차로의 세 건물 갈등 상황과 중후반부 총격 장면은 영화 시나리오라고 불러도 될 만큼 사건 전개가 빠르다. 시대와 장소로 현재에 맞춰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어도 상당히 좋은 결과를 보일 듯하다.

이 작품을 읽고서야 왜 심농을 별종 같은 천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심농은 대중소설의 기술력과 순수문학의 문장력을 동시에 갖추었다. 특히, 교차로의 밤은 미국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보는 듯했다.

매그레 반장의 수사 방식 자체가 괴짜다. 증거 수집해서 수수께끼 조각을 맞추는 것에는 별 관심도 없고 오로지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태도와 외모와 옷차림에 집중해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빨리 쓰느라 그랬는지 생뚱맞은 문장이 튀어나와 있기도 하던데...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Posted by lovegood
,

누런 개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인간적인 반전


'누런 개'는 매그레 시리즈 소설 중에서 잘 알려진 작품들 중에 하나다. 열린책들에서 펴내기 전에 동서미스터리북스 시리즈 '사나이의 목'에 수록되어 있었다, '황색의 개'라는 제목으로.

이 누런 개는 사건 현장마다 등장한다. 그래서 개가 살인범은 아니지만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열쇠들 중에 하나가 된다.

총살 피살 미수, 독살 미수, 실종 등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누런 개. 사건 현장에 정체불명 발이 큰 사나이의 발자국이 발견된다. 누군가 사건 수사 내용을 알아채고 신문사에 해당 내용을 선정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기사를 써서 익명으로 투고하고 그것이 실린다. 콩가르노 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이는데...

매그레 반장은 지문 뜨기 좋아하는 신참 형사랑 같이 수사한다. 매그레는 수첩에 용의자를 조사하며 적은 것을 르아루 형사한테 보여준다. 범죄는 결국 사람이 저지른 것이다. 반장은 사람 중심으로 수사한다. 과학 수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사건 해결과 설명은 푸아로 파이널식이다. 용의자와 사건 관련자를 한 자리에 모두 모여놓고 매그레 반장이 그간 일어난 일의 진상을 밝힌다. 그런데 끝에 기분 좋은 반전이 하나 있다. 매그레스럽다.

'누런 개'는 가난한 두 연인의 뜨거운 사랑을 부유층 권력층의 추악한 범죄와 대비시킨다.

추리소설은 한 번 읽고 버리는 장르다.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다시 읽어서 재미를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감정이 이번 다섯 번째 독서에서는 안 났다. 그럼에도 초반 공포 분위기 조성과 사건을 미궁으로 빠트리는 솜씨를 보는 재미는 여전했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일회용 독서용 추리소설임에도,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다. 매그레스러운 인간적인 추리소설이라서.

 

죽음을 부르는 개


개로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건 셜록 홈즈의 '배스커빌의 개'가 연상되고, 용의자와 사건 관계자를 모두 불러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모습은 푸아로가 떠오른다. 수수께끼 풀이식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렇게 덜 심농스러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들 것이다.

전반부에 미스터리와 공포가 구축된다. 죽음을 부르는 개. 거대한 사나이의 큰 발자국. 음산한 분위기.

역시나, 심농스럽게도 기구한 사연이 여러 사람들과 엮이며 전개된 기이한 사건이었다. 후반부에 범죄자를 풀어주는 매그레스러움까지 더한다. 매그레 반장의 구수한 인간미.

그의 소설이 영화로 자주 만들어지는 것은 그의 문장을 읽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장면장면을 설명하듯 쓴 문장들은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 든다. 특히, 초반부 묘사는 한 문단 한 문단이 영화 장면처럼 펼쳐진다. 아예 대놓고 "이 장면 이후..."라는 문장도 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부르주아와 지배층에 대한 냉소는 묘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 옛날 소설에서, 1931년에 쓰고 발표된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덧붙임: 동서추리문고에는 '사나이의 목'이라는 책에 합본되었다. 제목은 '황색의 개'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7번. 

 

Posted by lovegood
,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어떤 추리소설을 좋아하느냐는 각자 나름이겠는데, 나는 범죄 미스터리에서 범죄자의 인생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 부분은 건너뛰거나 아예 안 읽기도 한다.

하지만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 시리즈 매그레에서는 해당 사연을 읽지 않고서는 사건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미스터리보다 그 미스터리에 얽힌 사람의 눈물겨운 삶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추리소설을 읽으려다가 인생 드라마를 읽게 된다.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의 초반 수수께끼는 이렇다. 마구간 짚 더미에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이 여자의 옷차림이나 외모, 그리고 평소 생활을 봐서는 절대로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수사에 착수한 매그레 반장은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퇴역 대령으로 배를 몰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자다. 그리고 그와 같이 배로 여행하며 그 생활을 즐기는 남자도 수상하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사람이 죽고, 여자의 남편을 의심해 봤으나 역시 범인 가능성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가?

역시나 씁쓸하게 끝난다. 이번에는 범인이 직접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매그레 반장이 추리한 것을 범인 앞에서 이야기해서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고 황당한 비약이 없진 않지만, 끝까지 읽고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트릭이며 이야기 전개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씁쓸한 인생


매그레 시리즈 4권을 읽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심농은 추리소설도 범죄소설도 아닌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것을. 제목에서 범인과 결말을 보이게 쓴다는 것 자체부터가 범인이 누구냐식의 소설을 거부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수께끼 게임식을 따르지 않으면서 주인공 매그레 반장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한 인생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되는 것이다.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는 초반의 기이함과 중반의 연쇄 살인이 궁금증을 일으키는데 감동의 포인트는 미스터리 풀이가 아니라 그 사건에 얽힌 사연이다.

씁쓸하고 모순되고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나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니다. 사건의 주인공이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 감동의 효과를 가장 잘 만든 작품은 지난 독서 중에는 '갈레 씨, 홀로 죽다'가 단연 최고다. 많은 이들이 수작으로 손꼽는다.

'갈레 씨, 홀로 죽다'에 비하면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는 감동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야기가 억지스럽다. 트릭 틀에 맞추다 보니 그리 된 모양인데, 전작들에 비해 자연스러운 면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인공 사연의 비약도 심하다.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다작하는 작가들이 그렇듯, 작품 수준이 항상 최고인 건 아니다. 스티븐 킹만 해도 어떤 것은 정말 좋았다가 어떤 것은 정말이지 안 좋다.

그래도 읽은 이유는 작풍 때문이다. 아무리 못 쓴 작품이더라도 매그레 시리즈 아무거나 잡아서 읽게 되는 이유다. 마치 씁쓸한 커피에 중독되듯 심농이 써내려가는 인생의 맛에 익숙해진다. 인간 군상들의 인생살이를 절절하게 써 놓는데 이게 한 번 읽기를 맛들이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후반부에 어마어마하게 감정 이입을 시키는 필력은 경이롭다. 마부의 최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문장들이 저돌적으로 몰아치며 읽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 덧붙임: 시리즈 표지들을 보고 이제서야 깨달았다. 연결되는 그림이다. 1권 표지에 병 속 열쇠가 있는데 다음 2권 표지에는 그 열쇠를 이어받아 열쇠 안에 가방을 넣었다. 3권 표지는 2권의 가방을 이어받아 다음 권 예고인 말 그림을 넣었다. 4권 표지는 말 그림 안에 작게 다음 5권 예고인 등대를 넣었다.

 

Posted by lovegood
,

생폴리앵에 지다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벨기에

벨기에 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은 초콜릿이다. 이러니 외국인이 한국 하면 김치밖에 모른다고 핀잔을 줄 수 없으리라. 벨기에가 세계 지도 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유럽 어딘가? 구글 지도 검색해 보니, 네델란드 밑에 독일 왼쪽에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위에 있다. 영국과는 바다 건너 바로다.

영국 하니까 생각났다. 푸아로가 바로 이 나라 출신이다. 그리고 프랑스 작가로 착각하기 쉬운, 쓰는 언어가 불어니까, 조르주 심농이 이 '벨기에' 국적 작가다. 1903년 2월 13일 벨기에 리에주 출생.

생폴리앵은 심농의 고향에 실제로 있는 성당 이름이란다. 구글 지도에 나온다. Église Saint Pholien. 이 단어로 검색해 볼 것.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밝혀지는 동아리 이야기도 실화를 바탕으로 쓴 거라고. 이야기 자체가 워낙 소설 같아서 이게 정말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인가 싶다. 그렇게 현실과 상상은 겹치고 엎치락뒤치락한다.

매그레 반장은 우연히 만난 사나이의 행동이 수상하고 마침 딱히 할 일도 없어서 심심한 차에 그자를 추적한다. 그러다가 그자가 갖고 다니는 가방과 똑같은 걸 사서 바꿔치기를 한다. 그리고 계속 미행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내는 가방이 바뀐 사실을 알더니, 총으로 자살해 버린다. 이 정도는 황당함의 시작일 뿐이다.

뭔가 대단한 게 가방에 있나 열어 보니 양복 한 벌이 고작이다. 게다가 본인 옷이 아니다. 수사를 의뢰해 보니, 딱히 특별난 옷은 아니다. 다만, 피가 묻어 있단다. 수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루이 죄네라는 이름은 가짜였다.

추적 끝에 벨기에 리에주까지 가게 된 매그레 반장. 가짜 이름의 사내와 뭔가 관련이 있는 듯한 사람들의 모임. 이들은 매그레 반장의 수사를 방해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다. 지역 신문사를 돌면서 특정 날짜의 신문을 없애는 남자. 해당 날짜 경찰서 조서들 중 하나마저 뜯어갔는데,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는 것일까? 드디어 찾아내는 그 사건은 생폴리앵 성당 문고리에 목을 맨 사람이 발견된 것인데...

장황한 자백으로 지난 삶을 이야기하는 범인. 이런 식은 아무래도 구식인 듯.

여전히 끝은 씁쓸하다. 매그레 반장은 평소 마시는 맥주 대신에 가짜 압생트를 연거푸 들이킨다.

지난 두 작품(수상한 라트바이인, 갈레 씨 홀로 죽다)과 겹치는 대목이 흥미롭다. 갑작스러운 총격. 술꾼. 본명 대신에 다른 이름을 쓰면서 살아가는 남자. 매그레 반장한테 공소시효 만료를 부르짖는 인간. 협박으로 돈 뜯어내는 빈자. 돈으로 형사를 매수하려는 부자.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 행동 양식, 심리 상태.


매그레 반장의 범죄

소설 첫장 제목이 특이하다. 매그레 반장의 범죄. 영어 번역본은 원제 대신에 이 제목을 택했다.

매그레 수사반장이 범죄를? 뭐지? 매그레는 우연히 수상한 자의 뒤를 좇다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그의 가방을 뒤바꾸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 그는 자살하고 만다.

뭔가 대단한 게 가방에 들었나 싶어 봤더니 고작해야 낡은 양복 한 벌이 나왔다. 그런데 이 옷은 자살한 사람한테는 맞지 않는 옷이다. 게다가 피가 묻어 있다.

이 소설은 소설일 수밖에 없다. 실제 수사반장이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실은 자살 사건을 끝내고 더는 조사하지 않으려 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매그레는 끝까지 추적해서, 총 맞아 죽을 뻔 해도,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연속되는 추적과 총격 속에 사건의 진실을 알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나열되는 단서는 추가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기는 더욱 곤란해진다.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이야기에 더욱 몰입시키는, 심농의 솜씨가 일품이다.

매그레는 사건보다 사람에 치중한다. 왜 그가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가 살던 집과 그와 사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들어간다.

삶은 참 구질구질하다. 그래도 삶이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매그레의 시선을 따라 그 인물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담배가 피우고 싶어진다. 마음이 찹찹해진다. 이 소설 마지막에서 매그레 반장은 맥주 대신 연거푸 압생트를 여섯 잔 들이키고 있다. "인생보다 웃기는 게 뭐 있겠나!" 쓴웃음을 삼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26일만 지나면 공소 시효가 지난다며 아내와 자식이 있다며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을 용서한다기보다는 연민이었으리라. 내가 저 사람들 입장에 있었다면, 법의 처벌 문제를 떠나서, 나라도 그렇게 했을 법도 싶다. 좋은 사람들은 아니다. 하지만 가혹하게 애써 체포해서 감옥에 넣어야 정의가 실현되는 건 아니다.

매그레는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고 뻐기는 탐정들과 달리, 이미 다 파악했으나 말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범죄자들을 풀어주는 편이다. 이게 정말 수사반장이 할 짓인가.

매그레를 읽는 것은 사건 수수께끼 풀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매그레의 연민, 아니 작가 조르주 심농의 연민에 빠지기 위해서다.

Posted by lovegood
,

갈레 씨, 홀로 죽다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문학적 여운

정교하게 만든 미스터리다. 중간에 총알이 발사되고 누가 쏘았는지 추적해 가는 과정에 정신이 없는 중에 반전으로 사건을 풀어버린다. 힌트는 앞에 즐비하게 있지만 구체적인 사연을 알기 전까지는 알아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 대개들 끝까지 헤매고 뭐가 어떻게 된 일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대개의 추리소설들이 다 그렇듯, 트릭의 비밀을 알고나면 허탈할 것이다. 홈즈 시리즈의 '토르 교 사건'과 같은 수법이다. 심농이 이를 참고해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이 다섯 번째 읽는 거라서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재미는 덜했지만, 독자를 당황하게 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게 하는 솜씨는 잘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 불쌍한 갈레 씨. 지지리도 복이 없었던 인생.

심농은 매그레 시리즈 추리소설에서 범죄 수수께끼 게임보다는 범죄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분위기, 인상, 그리고 인생살이에 치중한다. 실제로 인상적으로 남는 것은 범죄 수수께끼 풀이가 아니라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야 했던 갈레 씨의 사연이다. 소설 끝 부분은 손수건 한 장 곁에 두고 읽어야 할 지경이다.

"다만, 그의 오른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그는 여전히 서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죠.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래 평화였어! 그가 기다렸던 것은 바로 그거였다고!" 252쪽

단순히 추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문학적 여운을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매그레 시리즈 총 19권에서 나는 이 소설 '갈레 씨, 홀로 죽다'를 최고로 꼽는다. 가장 쓴 맛이 나는 소설이다.

추리물을 넘어 문학으로

시리즈 1권 '수상한 라트비아인'에서 실망한 탓에 기대를 안 하면서 읽었다. 후반부로 가도 뭐 그러려니 싶었다. 그러다 바로 다음 문장을 만나고 조르주 심농을 문학 천재로 불러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다만, 그의 오른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그는 여전히 서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죠.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234, 235, 243, 252쪽

이 문장을 무려 네 번 반복한다. 첫번째는 사건을 목격한 생틸레르의 진술로 나오고, 두번째는 사건을 풀어내는 수사반장 매그레의 회상으로 또 나오며, 세번째는 사건을 풀어서 말하는 매그레의 말에서 나오고, 네번째는 사건 종결 후 매그레가 회상하면서 중얼거리며 나온다.

조르주 심농은 그 문장을 네 번 반복하면서 희열을 느꼈으리라. 좋은 이야기를 썼음을 온몸으로 느꼈으리라. 정말 글 잘 쓰는 인간이다.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하라.

미스터리도 훌륭하지만 여기에 연민의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무려 네 번이나 같은 문장을 반복하면서 감동의 망치질을 해대는, 작가의 자신감이라니! 걸작이다.

소설 '갈레 씨, 홀로 죽다'는 매그레 시리즈가 읽고나면 재미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오락용 추리소설을 넘어 왜 문학작품인지 보여준다.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 경우는 드물다. 답을 아는 상태에서는 궁금증이 없기 때문이다. 답을 알면서도 다시 읽는 이유는 바로 그 궁금증을 어떻게 유발시켰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추리소설 작가는 이미 범인과 범행 수법을 확실하게 안 상태에서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를 최대한 숨기면서 독자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 절대로 쉽게 알아낼 수 없게 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그렇게 썼을까? 단순히 읽는 재미만을 얻는 독자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한 번 읽고 말지만, 그 이상의 독자나 작가가 되려면 두 번 이상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간 질환이 있는 남자, 에밀 갈레가 죽었다. 얼굴 반쪽이 날아가고 심장이 꿰뚫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떻게 해도 말이 되지 않는 단서들만 나열될 뿐이다. 그러다 후반부에 갑자기 매그레가 이 단서들을 이어맞추면서 죽은 갈레 씨의 인생이 드러난다. 기막힌 수수께끼와 그 풀이를 넘어 인간다움을 담아낸다.

우물 하나와 객실 하나, 그리고 권총. 알고나면 대단한 트릭일 것도 없다. 

셜록 홈즈의 '토르 교 사건(The Problem of Thor Bridge)'과 비슷하다. '토르 교 사건'을 읽고 감동한 사람은 없어도 '갈레 씨, 홀로 죽다'를 읽고 감동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갈레 씨는 최선을 다해 살고자 그토록 처절하게 죽어야했다. 불쌍한 남자. 인생 참 안 풀렸던 그였고 아내고 자식이고 별 다른 사랑조차 받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그들을 위해 살고자 했다.

 

Posted by lovegood
,

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균열 이론


:: 초반 걸작이 있는 초기 19권 매그레 시리즈 세트

조르주 심농은 추리소설 매그레 시리즈로, 유럽에서 유명한 작가다.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단편소설과 몇몇 장편이 번역되어 소개되다가, 열린책들에서 작심을 하고 매그레 시리즈 전집 번역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으나 판매량 부진으로 초반기 작품 19권까지만 나오고 멈추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 초반 19권에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이 있다. 교차로의 밤, 누런 개, 타인의 목.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라는 750원짜리 홍보 책자를 따로 만들고 서표 사은품도 끼워줬는데, 역부족이었다. 국내 독자들은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스타일이 확고부동한 인기를 차지하며 다른 스타일은 그다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가 홈즈나 푸아로와 다른 점 - 인간미

심농의 매그레 형사는 홈즈나 푸아로와 도대체 뭐가 다른가? 코난 도일도 애거서 크리스티도 범인과 형사를 평면적인 인물로 그린다.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고 선의 탐정이 악의 범인을 잡아내는 퍼즐 수수께끼에 몰입할 뿐, 그런 범죄나 그런 탐정의 삶을 진지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코난 도일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는 탐정이 범인/살인자에게 인간적인 연민이나 깊은 공감, 혹은 교감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심농의 추리소설에 나오는 매그레 형사는 그들과 다르다.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서 범인의 기구했던 삶 이야기를 장황하고도 자세하게 들려주고, 형사는 거기에 인간적인 관심과 감정을 갖는다.

매그레 시리즈 첫 번째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추리소설 많이 읽은 독자라면 그 트릭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열차 화장실 안에 죽어 있는 사람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서 열차를 빠져나가고 있으니. 

추격, 잠복, 총격, 살인, 인물의 출몰로 가파르게 진행된다. 안락의자 탐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범인을 쫓는 형사라서 그렇다. 범죄 수수께끼는 갈수록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마침내 끝에서 해결된다.

작가는 독자의 추리게임을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는다. 형사 매그레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식으로 사건을 풀어내 설명한다. 왜 그렇게 알 수 있고 왜 그런지 명확하게 밝히는 편이 아니다.

따라서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추리소설 감상 포인트는 범죄 퍼즐 수수께끼 게임보다는 범죄자의 삶과 그 삶을 관찰하는 매그레의 '인간적인' 시선에 있다. 이 범죄자들의 삶은 대개가 가난하거나 우울하고 한이 많다.

:: 균열이론 - 모든 범죄자에게는 '인간'이 존재한다

매그레한테는 '균열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모든 범죄자, 모든 악당의 내부에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초한 이론이다."

매그레 시리즈는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는 시절의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요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과학수사 못지 않은 기술력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매그레의 진정한 추리력은 인간 탐구에서 나온다. "과학적 수단들을 활용해 왔던 게 사실이다. 다만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종의 '균열'을 찾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게임 상대한테 생기는 어떤 '틈' 사이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말이다!"

:: 매그레, 인간미의 여운

시리즈 첫 권 '수상한 라트비아인'부터 매그레 형사는 형사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고 만다. 왜 그러나? 매그레가 범죄자를 인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죽을 고생을 다해 범죄자를 검거하고 난 뒤부터 바로 그 범죄자들을 향한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되고, 감옥에 수감된 그를 찾아가, 마침내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는 형사들이 세상에는 부지기수인 것이다."

수상한 라트비아인 사건은 몇 문장의 간결한 공식 사건 전모 서류로 끝나지만, 매그레의 인간적 매력과 인간 통찰력은 범인의 기구한 인생과 함께 오랜 여운을 남긴다.

책 표지 그림은 232쪽에 나오는 '길쭉한 럼주 병'이다. 범죄자 라트비아인은 그 술병을 들이켜 마시며 자신의 기구했던 지난 삶을 매그레 반장한테 줄줄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다.

영국 추리소설이든 미국 추리소설이든 대개가 범죄자의 사연은 깊게 파고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연이라는 게 인상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매그레 반장 시리즈에서는 거의 매번 이 범죄자의 지난 인생살이 이야기가 소설의 후반부에서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리하여 눈물겹고 쓰디쓴 감상을 남긴다.

범죄 수수께끼와 인생 극장이 결합된 드라마, 매그레 시리즈를 추리소설 애독자에게 추천한다.

:: 인간애를 담은 추리소설


전자책으로 처음으로 통독한 책이 조르주 심농 '수상한 라트비아인'이 됐습니다.

전자책은 종이책과 달리 글꼴, 글자 크기, 줄간격, 들여쓰기, 배경색, 글자색 등을 내가 보기 편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종이책은 출판사의 편집본을 거부할 수 없지요.

전자책은 당연하게도 배송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구입하자마자 다운로드해서 바로 읽을 수 있죠.

저는 19권짜리 세트로 사서 하나씩 내려받아서 읽는 중입니다.

구입하고서야 알았는데, 매그레 시리즈는 19권에서 멈추었답니다. 더는 국내에 번역출간하지 못하는 상황이랍니다. 저는 그냥 19권이 전부인 줄 알았죠. 장편만 75편이 나왔다고 하네요.

전자책 얘기가 길었네요. 이제 소설 얘기를 해 보죠.

추리소설 중에 매그레 시리즈는 국내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습니다. 열린책들에서 야심차게 매그레 시리즈 전권 번역출판을 기획하고 홍보를 했지만요.

셜록 홈즈와 포와로의 수수께끼 풀이식 오락소설에 익숙해진 탓일까요. 단 한 번이라도 매그레 시리즈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확실히 기존 추리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인공 매그레는 수사반장인데요. 그가 현장을 뛰면서 범인을 추적하고 잠복하고 범인과 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기존 탐정소설이 보여준 모습과는 다릅니다. 어떤 독자는 유럽 지도를 펴놓고 매그레의 동선을 따라가 본다고 해요. 그만큼 실감나게 정확히 묘사했습니다.

추리소설은 대체로 살인범 찾기 '놀이'거든요. 그래서 실제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설령 실제 시공간 배경을 이용한다고 해도 이름을 살짝 바꾸죠. 언론인 출신인 조르주 심농은 이런 스타일을 거부하고 현장감을 중시해요. 그래서 문장을 읽으면 정말 내가 매그레와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비를 맞으며 범인이나 용의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죠.

번역이라서 원문 문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이방인을 쓴 알베르 카뮈의 전언("심농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방인'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거다.")과 전반적인 문장 분위기를 보면, 간략하다 못해 바싹 태운 간결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일은 없습니다.

'수상한 라트비아인'의 트릭은 추리소설 웬만큼 읽을 사람들한테는 시시하고 예전에 너무 많이 봐서 식상할 지경에 이른 겁니다. 옛날 책은 옛날 책인 거죠. 이 트릭이 업그레이드된 최근 작품이라면 다이안 세터필드의 고딕소설 '열세번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직 안 읽은 분들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 이런 느낌이 듭니다. 매그레는 범인을 동정하고 있구나. 추리소설에서 탐정과 범인은 서로 상극입니다.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길게 나눌 상대는 아니죠. 탐정은 범죄자를 잡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의 '인간'을 추적합니다. 작품에서 '균열 이론' 또는 '틈'이라고 부르는 이 '인간 존재'를 체포합니다. 

매그레 자신이 남몰래 <균열 이론>이라 이름 붙인 일종의 원리 말이다. 이는 한마디로 모든 범죄자, 모든 악당의 내부에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초한 이론이다. ... 과학적 수단들을 활용해 왔던 게 사실이다. 다만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일종의 <균열>을 찾아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다는 게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게임 상대한테 생기는 어떤 <틈> 사이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 말이다. - 5장 술 취한 러시아인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길게 자신의 범행을 실토하는 식입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명쾌하게 완결되거든요. 이 소설 '수상한 라트비아인'도 범인의 주구장창 긴 사연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매그레 시리즈의 특징은 그 다음이죠.

매그레는 범인을 잡으려고 하지만 범인을 벌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는 범인을 이해해주고 범인의 말을 들어주고 그가 스스로 결정하게 내버려 둡니다. 여기서 미묘한 감동이 생기고 우직한 매그레를 사랑하게 되죠. 읽고나면 술 한 잔 하거나 담배 한 대 피우거나 오징어라도 씹어야 할 겁니다. 인생, 씁쓸하죠.

왜 그 많은 유명 작가들(세풀베다, 벤야민, 카뮈, 지드, 밀러, 엘리엇, 헤밍웨이)이 매그레 시리즈를 찬양하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인간애가 담겨 있는 것이죠.

……


이로써 두 번 읽었다. 처음에는 전자책으로, 이번에는 종이책으로. 처음에는 몸살 감기로 아픈 몸으로, 이번에는 건강한 상태로. 처음에는 뭐가 뭔지 트릭이 뭘까 궁금해 하면서, 이번에는 답을 알지만 과연 어떻게 독자가 궁금하게 이야기하는지 살피면서.

조르주 심농의 초기 단편 미스터리에는 이런 식의 구구절절 사연 가득한 범죄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전형적인 영국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 풀이 게임만 있었다. 그러다가 매그레 반장이라는 우직한 캐릭터 하나를 탄생시키면서 범죄 수수께끼에 안타까운 인생살이를 놓았다.

범죄 게임만 이야기했더라면 매그레 시리즈는 성립되지 않는다. 시리즈 첫 작품에서 그가 쓰는 추리소설의 지향점은 확실하다. '인간적인 애정'이다. "죽을 고생을 다해 범죄자를 검거하고 난 뒤부터 바로 그 범죄자를 향한 인간적인 애정을 품게 되고, 감옥에 수감된 그를 찾아가, 마침내 교수대에 오르기까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 주는 형사들이 세상에는 부지기수인 것이다."(232쪽)

심농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만들 줄 아는 소설가다.

……

전자책 - 종이책 - 다시 전자책. 세 번 읽었다. 추리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읽었을 때의 재미나 호기심은 줄어든다. 이미 수수께끼의 답을 알고 어떻게 사건이 전개되어 결말이 날지 알고 있으니 그렇다.

매그레 시리즈 스타일은 이 소설을 시작으로 해서 거의 변화가 없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고 반장은 추적하고 범인은 잡히고 반장과 범죄자는 서로 얘기하고 감동과 후일담으로 끝난다. 범죄 수수께끼를 추리해서 맞추는 재미는 많지 않다. 매그레 반장이 그냥 알았다고 말할 정도니.

소설 '수상한 라트비아인'은 사건이 긴박하게 전개된다. 시작부터 총격 사망 사건이다. 관련 용의자들이 계속 움직인다. 반장은 용의자를 추적하다가 총에 맞아 죽을 뻔한다. 반장의 부하 한 명은 살해당한다. 처음 읽는 독자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범인을 동정하는 형사라니. 범죄자의 지난 인생 이야기는 씁쓸하다.

 

Posted by lovegood
,